반복은 n8n에게, 판단은 스킬에게 — 지출결의서 업무를 손과 뇌로 나눴더니

에이전트 스킬 만들기 수업을 듣고, 실제 회사 업무(지출결의서)에 쓰는 스킬을 뜯어본 기록.

-배경만 짧게: 나는 콘텐츠 쪽에서 일한다. 프로젝트 관리 일은 그중 하나다. 코드는 못 쓴다. 몇 달째 Claude Code로 업무 에이전트 시스템을 만들어 쓰고 있다.


1.매달 반복되는 지출결의서

내 일 중 하나는 매달 정해진 출금일 전에 지출결의서를 올리는 것이다. 현재 5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들어가 있고, 프로젝트당 적게는 1~2건, 많으면 수십 건을 올린다.

한 달 치 일을 펼치면 이렇다:

  1. 세금계산서·고지서 메일을 하나하나 열어서 (보안메일은 복호화까지 해서) PDF로 저장

  2. 어느 프로젝트 지출인지 분류

  3. 지출결의서 엑셀에 금액 입력

  4. 증빙 파일을 항목별 폴더로 정리하고, 지결 숫자와 증빙 숫자가 맞는지 눈으로 대조

  5. 고용보험 현황표 갱신 (누가 계속 일하고, 누가 그만뒀고, 누가 새로 왔는지)

  6. zip으로 묶어 회사 시스템에 업로드, 끝나면 프로젝트 폴더에 아카이브

  7. 마지막으로 프로젝트당 지출현황 갱신

2. 자동화 1차 — 워크플로우(n8n)가 '손'을 가져갔다

먼저 만든 건 스킬이 아니라 n8n 워크플로우였다. 상시 켜둔 맥미니에서:

  • 메일이 오면 자동 수취 → 보안메일 복호화 → PDF 렌더 → 프로젝트 분류 → 저장

  • 매달 출금일 7일 전: 지난달 지결 엑셀을 템플릿 삼아 이번 달 초안 자동 생성 (자동으로 채운 금액 셀은 빨간 글씨로 표시)

  • 매달 출금일 5일 전: 증빙을 지급건별로 번들링 + 텔레그램 보고(완료 혹은 누락)

여기까지로 1~3번(수취·분류·입력)이 사라졌다. 전부 정해진 규칙대로 반복하는 일이라 스케줄러가 돌리는 스크립트로 충분했다.

3. 그런데 스킬은 뭐지? — 사례글 쓰다가 나온 질문

수업 사례글을 쓰려고 "내가 만든 스킬"을 꼽아보다가, 내 입에서 이 질문이 나왔다.

"근데 지결셋업이 스킬이야? 그냥 워크플로우 아니야?"

파일을 까보니 반은 맞는 말이었다. 내 지결셋업 스킬(SKILL.md)은 "n8n이 만들어둔 산출물을 바탕화면으로 옮기고 조립하는 절차서"에 가까웠다. 무거운 자동화는 다 워크플로우(n8n)가 하고 있는데, 스킬이라고 부를 게 있나?

그런데 분담표를 실제로 그려보니 답이 보였다.

워크플로우(n8n) =

스킬(SKILL.md) =

성격

결정론 — 같은 입력이면 같은 출력

판단 — 맥락을 읽어야 하는 일

하는 일

메일 수취, 복호화, PDF 렌더, 분류, 엑셀 초안, 번들링

지결↔증빙 교차검증, 금액 의미 판정, 예외 복구, 미비 판단·보고

도구

스케줄러 + 스크립트

클로드 코드 (Claude Code)

4. 스킬이 하는 '진짜 판단' 3가지

깨닫고 나서, 스킬을 절차서에서 판단 엔진으로 개보수했다. 스킬이 맡는 판단은 세 가지다.

판단 ① 교차검증 — 사람이 눈으로 하던 대조를 통째로

지결 엑셀의 각 줄을 증빙 PDF 원본과 대조한다. 생성기가 빨간 글씨로 표시해둔 "검증 필요" 셀부터, 스킬이 증빙 PDF를 직접 읽어 금액을 뽑고 → 공급가액/납부총액/비고란 월 표기를 셀 단위로 맞춰본다.

여기서 제일 "AI라서 되는" 판단이 나온다. 자동으로 채워진 금액이 부가세 전 금액인지 포함 금액인지는 증빙의 공급가·세액·합계 세 값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스크립트는 숫자를 옮길 수 있지만, "이 숫자가 무슨 의미의 숫자인지"는 못 정한다.

불일치가 나오면 증빙 기준으로 엑셀을 고치고, 뭘 어떤 근거로 얼마에서 얼마로 고쳤는지 보고서에 남긴다.

판단 ② 고용보험 현황표 — 규칙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판단

이 업계는 프리랜서 중심이라 인력 변동이 잦다. 프로젝트마다 사람이 달마다 합류하고 빠지고, 그때마다 고용보험 현황표("지금 누가 일하고 있는지"의 명부)를 갱신해서 제출해야 한다. 서류 작업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명부 판단이다:

  • 그만둔 사람은 현황표에 남기고, 원천징수에서만 뺀다 (현황표는 누적 명부니까)

  • 새로 온 사람은 새 줄로 추가 (기존 줄 덮어쓰기 금지)

  • 누가 활성이고 종료인지 애매하면 — 추측하지 말고 나한테 물어보게 했다

이건 한동안 자동화를 보류했던 일이다. 라이브러리로 시트를 복사하면 파일이 깨지는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누가 그만뒀는지"는 데이터가 아니라 맥락이니까. 스킬에는 안전한 편집 경로(파일째 복사 + 셀만 수정)와 판단 규칙을 넣고, 위험 구간과 애매한 판단만 나에게 넘어오게 했다.

판단 ③ 예외 트리아지 — "왜 안 됐고, 어떻게 살릴까"

자동 수취는 조용히 실패한다. 잠금 화면이 PDF로 저장돼 있거나, 인증 게이트에 막혀 빈 페이지가 오거나. 그래서 검증 스크립트가 불량 증빙을 잡아내면, 스킬이 증상을 보고 원인을 판정해 복구 경로를 고른다:

증상

판정

복구

파일이 비정상적으로 작고 "보안메일" 문구

복호화 실패

브라우저 에이전트로

재복호화

인증창 캡처

승인 미처리

승인 후 재수취

1회용 링크 만료

재발급 필요

"재전송 요청 필요"로

보고에 올림

아예 캡처가 없음

수취 실패

백업 폴더 뒤지고,

없으면 미비 보고

그리고 최종 보고: 프로젝트별로 완료/미완료를 판정하고, 미완료면 "뭐가, 왜 안 됐고, 뭘 해봤는지"를 자연어로 정리해 준다. 나는 그 보고만 보고 남은 것만 처리한다.

5. 두 컴퓨터의 릴레이 — 내가 제일 신기해하는 부분

이 시스템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신기한 건 이 대목이다. 모든 밑작업은 맥미니에서 일어나는데, 25일이 되면 결과물이 내 주 컴퓨터(윈도우 노트북) 바탕화면에 놓여 있다.

구조는 이렇다:

한국어 글꼴 - 스크린샷 1

두 컴퓨터는 테일스케일(Tailscale)이라는 무료 개인 VPN으로 묶여 있다. 같은 집이든 회사든 어디서든 서로를 사설 IP로 바로 부를 수 있어서, 노트북의 클로드 코드가 맥미니에 SSH로 건너가 "지난달 것처럼 이번 달 것도 가져와"를 실행할 수 있다. 클로드 코드가 파일만 만지는 게 아니라 다른 컴퓨터로 원정을 간다는 걸 처음 봤을 때, 아 이건 채팅 AI가 아니라 일꾼이구나 싶었다.

역할이 이렇게 나뉜 이유도 단순하다. 맥미니는 24시간 켜져 있으니 "기다리는 일"(메일 오면 받기, 정해진 날 초안 만들기)을 맡고, 노트북은 내가 실제 일하는 자리니 "내 앞에 놓아주는 일"(조립·검증·보고)을 맡는다. 그리고 이 판단 레이어는 스킬 문서만 있으면 어느 컴퓨터의 어느 에이전트로든 옮겨 꽂을 수 있다 — 절차와 규칙이 문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게 스킬의 또 다른 장점이다.

6. 결과 — 25일에 바탕화면을 열면

매달 25일, 바탕화면에 폴더가 생긴다. 프로젝트별로:

  • 완료 = 지결 엑셀 + 증빙 묶음 + zip, 딱 3개. 나는 업로드만 한다.

  • 미완료 = 지결 + 증빙 묶음 + "임대료 계산서 미발행, 재전송 요청 필요" 같은 사유 보고.

마지막으로 업로드를 마치고 클로드 코드에게 "지결 완료했어" 한 마디 하면, 스킬이 프로젝트 완료 폴더로 아카이브하고 바탕화면을 치운다. 이 모든 일에서 내게 남은 건 최종 확인과 업로드뿐이다.

7. 배움 정리

처음엔 '스킬 비중을 높이려면 워크플로우 일을 스킬로 옮겨야 하나' 생각했다. 반대였다. 반복 작업을 AI에 넘기면 느리고 불안정해질 뿐이다. 기계적인 일은 기계(워크플로우)에, 판단만 스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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