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같은 질문을 한글로 한 이유와 영어로 번역해서 질문해야 할 때 GPT가 답변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한국어로 질문한 경우
답변을 보다가 참혹해서 중간에 정지시키기 시작했습 니다.
같은 질문을 영어로 번역하여 물어본 경우
꽤 의미 있는 답변을 볼 수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2) 영어로 번역할 때 주의점.
번역 이전의 한국어 문장이 중의적인 경우 생각지도 못한 영어 문장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문장 성분을 가급적 생략하지 않고, 중의적으로 해설될 수 있는 동음이의어 등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영어로 번역해서 물었을 경우 ( GPT의 한계) 한국어를 온전한(?) 영어 문장으로 번역하여 물었을 경우 한국어로 물었을 때와는 달리 꽤 신중한 답변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신중한 나머지 큰 영양가 있는 답변은 아니었습니다.}
고유명사를 프랑스와 독일어 등 원어표기로 옮기면서 해당 국가의 언어로 쓰여진 자료를 이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먼저, 한 답변에서는 루만의 제텔카스텐이 같은 ‘트리 구조’와 들뢰즈와 데리다의 ‘리좀’ 개념과 유사하다는 것 그리고 그리고 다른 답변에서는 양자 모두 본질주의자가 아니고 이원론자가 아니라는 점 등을 정확하게 집어 냈습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1) 같은 프롬프트를 던져도 GPT는 다른 답변을 할 수 있거나, 프로믚트의 사소한 차이가 답변의 상당한 차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
2) GPT가 유에서 무를 창조하지는 않는다는 점
들뢰즈는 철학자, 루만은 사회학자로 이 둘을 비교 연구하는 거의 없었습니다. 동일 이슈에 대한 들뢰즈적 접근과 루만적 접근에 관한 논문들만 국내 국외에서 간간히 검색되었을 뿐이고 설 주고 받은 영향 관계에 대해서는 검색된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GPT의 답변은 제가 간단한 아이디어 차원으로 카톡 방에 올린 내용이나, Antinet 원서 독토를 하면서 떠올라서 끄적거린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GPT는 남들은 잘 알고 많은 글을 남겼지만 나는 모르는 분야에서 탁원할 가이드를 해줄 수 있지만 남들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분야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