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발전하는데 경제 규모는 그대로?
여러분은 100년 안에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자의 몇 퍼센트를 대체한다고 생각하시나요?
100%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겠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인공지능이 90% 이상의 인간을 대체해도
일자리 개수는 줄어들지 않도록 만들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경제 성장입니다.
2100년을 기준으로
일자리 대체율이 달라짐에 따라
기존 일자리 개수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 성장률 변화를 간단하게 계산해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한 대략적인 계산이니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위 연 평균 경제성장률은 한국의 장기 평균 고용탄력성 (경제 성장률 1% 당 취업자 수가 0.34% 증가)
에 따라 계산된 값입니다.
김천구, “SGI BRIEF : 최근 노동시장의 현황과 특징”, 2022.10.31, 대한상공회의소
일자리는 경제 성장률에 비례해 증가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50% → 80% → 90% 로
인간 노동자를 대체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져도
인공지능이 그만큼의 경제 성장을 함께 일으킬 경우 일자리 수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물론 이 표의 계산 근거를 보고
이런 똑똑한 질문을 제기하는 분도 계실겁니다.
“인공지능에 의해 고용 없는 성장이 심화되면 계산 근거인 고용탄력성도 0.34보다 더 떨어지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 하락분은 이미 표에 반영돼 있습니다.
경제가 꾸준히 성장했는데도 75년 후 사람을 위한 일자리의 개수는 그대로인 게 보이시죠?
이 표는 극단적으로 장기 평균 고용탄력성이 0이 될 때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의 일자리 대체율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계산한 것입니다.
상당히 보수적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순 계산이긴 하지만,
만약 2100년까지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대체율 대비 연 평균 경제 성장률이 위의 표와 비슷하게 흘러갈 경우
일자리의 총 개수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점은
일자리 대체율이 증가할수록 AI 활용률도 높아져
생산성 증가로 인한 장기 경제성장률 증가가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점입니다.
경제학자들이 AI와 함께 하는 미래가
장밋빛 미래가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일자리 대체율만 생각하고
이에 따른 경제 성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과 같은 실수는
경제학과 통계학에서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실수 중 하나입니다.
상황이 변하는 데도 나눠먹을 파이의 크기는 그대로라고 잘못 가정한 데에서 생기는 오류라 해서
“고정된 파이 가정의 오류”라고 부르거나
인공지능과 인간처럼
협력 및 보완 관계에 있어 함께 일하면 일자리가 늘어나는 포지티브 섬 게임을 하고 있는데도
서로 완벽한 대체관계에서 한정된 일자리를 뺏고 뺏는 제로섬 게임을 한다는 착각에서 생기는 오류라 해서
“제로섬적 사고의 오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일자리가 아닌 부의 분배
하지만 일자리 개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분배를 고려하면 위 표에 따라
같은 기간 심각한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표처럼 일자리 대체율이 높게 치솟으면
기존 일자리가 대체되고 새로운 일자리로 직업을 옮기는 사람의 숫자도 굉장히 늘어납니다.
문제는 자동화 기술에 의해 경제성장이 일어날 경우
초기에는 신규 직업군이 형성되기보다 기존 일자리 대체 현상이 집중적으로 일어나
주로 생산성 개선이 더딘 분야 (돌봄 노동, 대면 서비스 등) 에서 일자리 경쟁이 심화됩니다.
이런 산업은 초기에 자동화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질 걱정은 적지만
마치 중세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 때처럼
노동 공급이 이쪽으로 몰려 실질 임금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가 아닌, 질 낮은 일자리가
인공지능이 만든 고용 충격을 흡수하게 되는 거죠.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개수보다 부의 분배 문제를 훨씬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낙담하기는 이릅니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일자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다니요?
그러려면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깨야합니다.
“일자리는 만들기가 어렵다”는
일자리 신화입니다.
케인스에 따르면
이 표현은 일자리에 대한 정확한 서술이 아닙니다.
“일자리를 만들기는 쉽지만 유지하기는 어렵다”라고 바꿔써야 정확해지죠.
“정부가 낡은 병에 돈을 가득채워 아무 폐광에다 묻어두고 기업들에게 마음대로 그 돈을 파가라고 하면 그때부터는 모두 그 돈을 파내기에 혈안이 되어 실업이 줄어들고, 실질소득과 부가 증가할 것이다.”
존 M. 케인스, “The General Thoe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 1936
이처럼
정부는 아무 일이나 시켜서 새로운 일자리를 원하는 만큼 만들 수 있습니다.
돈을 찍어내서 풀기만 하면 일자리는 생겨납니다.
→ 단기 경기 부양 정책이 바로 그런 정책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것이거든요.
→ 일자리 유지는 장기 성장 정책의 영역인 겁니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
“일자리를 만들기는 쉽지만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말은 곧
단기 경기 부양은 쉽지만, 장기 성장은 어렵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이해되시나요?
생산성, 진짜 부자가 되는 길
그럼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왜 어려울까요?
정답은 생산성 때문입니다.
가끔 뉴스나 인터넷에서
정부가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늘려 일자리 통계를 마사지한다는 비판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생산성 없는 현금살포성 일자리를 그 근거로 나열하면서요.
일자리는 늘려야 한다면서, 생산성 없는 일자리는 늘리지 마라?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간의 부를 돈이 아닌 생산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생산된 실물의 가치가 진짜라면, 돈의 가치는 가짜입니다.
위 표의
단기 부양 정책 행에 나타난 것처럼 돈이 2배로 늘어난다고 해서 부가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물이 그대로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뿐이죠.
그래서 돈의 가치는 가짜 혹은 신기루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생산물이 늘어나면?
과잉 생산, 장기 성장 행처럼 부가 늘어 납니다.
여러분의 부는 이처럼 생산이 결정합니다.
진짜 가치를 가진 생산물을 더 많이 만들어내야
우리들도 진짜 부자가 됩니다.
위 표에 나와있는 것처럼
가짜인 돈만 많아지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가격만 오르내릴 뿐입니다.
기업 vs. 국가의 복지 부담 싸움
앞서 살펴봤듯 정부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돈을 뿌렸는데
생산성 증가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 가격만 오를뿐 노동자들이 부유해지지는 않고,
생산성 증가가 뒷받침 되면 → 실제로 분배되는 생산물이 늘어나 노동자들이 부유해집니다.
그런데 생산성 증가가 뒤따라 부가 늘어났다고
기업들이 정부가 임시로 만든 일자리를 유지하려고 할까요?
일자리를 없애버리면 더 많은 부를 가져갈 수 있는데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인건비 < AI 사용료인 분야에 노동력을 투입하면
일자리를 없애는 것보다 고용을 유지하는 게 더 돈이 됩니다.
하지만 기업이 일자리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이 사회의 노동 활용 기술이 열악해
쓸모있는 일자리가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가정한 채
논의를 진행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정치인이 됐다 생각하고
기업이 일자리를 없애도록 가만히 내버려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번 상상해봅시다.
실업률이 10%, 20%, … 점점 올라가고
분배가 악화되어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국민들이 한 명, 두 명 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다가온 선거날
당연하게도, 여러분은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실각했습니다!
실업률과 분배, 복지를 나몰라라 했기 때문인데요
역사적으로 이 먹고 사는 이슈를 방치한 정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권 교체,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쿠데타와 혁명을 마주하곤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정치 생명을 이어나가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합니다.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도록 조치를 취하거나
국민들이 일자리 없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각종 정책을 도입하는 겁니다.
여기서 일자리가 단순히 생산을 위한 계약을 넘어
복지 수단의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오늘도 힘들게 퇴근하는 우리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지만,
경제학자들과 복지 정책 입안자들에게
일자리 창출은 자본주의 최고의 복지 정책으로 꼽힙니다.
국민연금, 기본소득제 등 다른 복지 수단에 비해
일자리는
복지 수단으로서 지속가능성이 훨씬 높고
부정적인 사이드 이펙트는 적으면서, 긍정적인 사이드 이펙트는 넘쳐나고
완전고용이라는 이상적인 복지 상태의 달성 가능성이 수없이 입증된
비교 대상조차 없는 독보적인 복지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정부 입장에서는 다른 복지 수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자리만의 특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부가 직접 부양 부담을 지지 않고
기업에 복지 부담을 떠넘길 수 있는 유일한 복지 수단이라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대규모 해고는
기업이 그동안 져왔던 노동자 부양 부담을 정부에 마구 떠넘기는 도발적인 행동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기업의 이런 복지 책임 떠넘기기 때문에
졸지에 정권 유지에 물음표를 던지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죠.
사람들은 미디어 등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문제를
힘 쎈 기업 vs. 힘 없는 노동자의 구도로만 봐왔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형성하면서
힘 쎈 기업 vs. 더 쎈 국가의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처음 실업률이 5%, 10%일 때
기업들은 이 싸움이 만만하다고 착각하겠지만
실업률이 15%, 20%로 치솟으면
드디어 뭔가 잘못 돼 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기업으로부터 폭탄을 떠넘겨 받은 정부가 2가지 카드를 꺼내든 것이죠.
법인세, 로봇세 등 기업의 자본에 부과되는 세율을 올리겠다고 합니다.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리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만약 정부가 지지율 욕심이 많다면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업을 악마화하고
정부는 그 악마 로부터 국민들을 지키는 신성한 대리인 역할을 자처할 겁니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국민들의 표가 우수수 쏟아지도록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강조되면서
각종 규제가 들어오게 됩니다.
정부에게 노동자 부양 부담을 마구 미루던
그 좋은 시절은 이제 다 간거죠.
그런데 여기서 정부, 기업, 경제학자들은 크게 2가지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기업이 노동자를 어떻게든 써먹을 방법을 찾아내 고용하게 하든지
과거와는 달리 상당한 자동화를 이뤄낸 기업이 로봇세만 부담하게 하든지
한 가지를 골라야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2를 선호할 겁니다.
로봇세 기반으로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면 노동이 사라진 유토피아가 열리니까요.
하지만 만약 노동력의 쓸모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면요?
국제 경쟁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1번 고용이 더 나은 선택일 경우 2번 로봇세 기반 기본소득제를 선택하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기술 발전 속도가 늦춰져 자칫 가난한 나라로 몰락해버릴 수 있습니다.
20세기 수입 대체 산업화를 선택해 몰락해버린 남미와
수출 주도 산업화를 선택해 21세기 주요 지역으로 급부상한 동아시아의 희비가 엇갈렸던 것처럼요.
노동의 미래와 선택의 갈림길
선택 의 문제에서
미래 예측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살면서 몇 번 큰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는데, 이 순간이 되면 우리는 선택을 강요당합니다.
늦출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때 만약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거나
잘못된 미래를 철저히 믿고 있으면 “수입 대체 산업화” 같은 이상한 선택을 내려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는 바로 그런 순간 중 하나라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국가나 개인 모두에게요.
노동의 미래 예측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국가나 개인이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첫걸음이자
중요한 한 걸음이 될테니까요.
드디어 끝이 보입니다.
노동의 미래를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한 끝에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길을 향해 나아가야할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부디 여러분이 나아가야할 길도 함께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9기AI임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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