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붙잡고 다듬은 제안서, 보내기 직전에 이런 생각 안 드시나요? "우리끼리 볼 땐 괜찮은데... 진짜 고객이 봐도 괜찮을까?"
이번에 AI 제안서 검토를 좀 색다르게 해봤어요. Claude Code한테 "검토해줘"라고 하는 대신, AI가 '우리 고객인 척' 연기하게 시켰거든요. 결과부터 말하면, 가상 고객이 매긴 점수가 10점 만점에 3점이었습니다. 아팠지만... 보내기 전에 안 게 천만다행이었어요.
문제: 내 눈은 이미 문서에 적응해버렸다
제안서를 며칠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내 눈이 문서에 적응해버려요. 오타도 안 보이고, 논리 구멍도 안 보이고, "이 정도면 됐지" 싶어집니다.
그런데 이건 한 번 보내면 되돌릴 수 없는 대외 문서잖아요. 팀원 붙잡고 "이거 좀 봐줘" 하기도 애매하고, 봐준다 해도 결국 우리 편 시선이고요.
이번 건은 어떤 성장기업에 보낼 AI 교육 제안서(8페이지)였어요. 발송 전에 완전 남의 눈으로 한 번 점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AI한테 가상 고객을 시켰어요.
어떻게 했나: AI 13명짜리 "셀프 레드팀"
그냥 "이 제안서 검토해줘" 하면 AI는 대체로 좋은 말을 해줍니다. 칭찬받자고 하는 게 아니니까, 역할을 잘게 나눴어요. 3층 구조로요.
1층 — 가상 구매자 (실제로 살 사람 흉내)
두 명의 고객 페르소나를 만들었어요.
- 페르소나 A: 바쁜 스타트업 대표 (30초 훑고 덮을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
- 페르소나 B: 예산에 민감하고, 외부 교육업체에 한 번 데인 적 있는 운영이사
각자 입장에서 제안서를 읽고 → "문의하고 싶은 마음"을 10점 만점으로 채점하게 했습니다.
2층 — 전문 감사관
- 차별화 담당 / 문서 구조(빠짐·중복) 담당 / 팩트체크(근거 없는 수치·빈말) 담당
- 각자 다른 렌즈로 문제점만 잡아내게 했어요.
3층 — 적대 검증관 (이게 핵심)
감사관들이 잡은 지적을 그대로 믿지 않고, 한 번 더 되받아치게 했어요.
"그거 진짜 문제 맞아? 트집 아니야?"
이렇게 재심사를 시키니까 억지 지적은 걸러지고, 진짜 문제만 남더라고요.
핵심은 딱 하나예요. "내 문서를, 내가 아닌 여러 관점으로 두들겨 보는 것." 혼자서는 절대 못 하는 일을 AI 역할극으로 만든 거죠.
결과: 생각보다 아팠습니다
가상 대표가 매긴 점수가 10점 만점에 3점, 운영이사는 4점. 둘 다 "조건부 관심"이었어요.
지적이 뼈아프게 정확했습니다.
가상 대표 曰:
"표지에서 제일 크게 박힌 게 '정가 대비 20% 할인'인데, 정가가 문서 어디에도 없다. 그 순간 이미 반쯤 닫았다."
"'3~5배', '6개월' 같은 숫자를 출처도 없이 통계처럼 나란히 배치한 순간, FOMO 마케팅으로 읽혀서 냉소가 발동했다."
"'성장기업 전용' 제안이라면서 사례는 전부 대기업·공공·언론사다. 나 같은 스타트업 사례는 딱 한 줄뿐. 타깃이랑 증거가 어긋난다."
한 마디로 "잘 만든 메뉴판이지, 오퍼(제안)가 아니다"라는 거였어요. 아, 이거 진짜 정곡이었습니다.
그래서 v2를 만들었습니다
지적을 반영해서 그 자리에서 v2로 다시 썼어요. 원본(v1)은 손 안 대고 그대로 보존하고요. 실제로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1. 근거 없는 수치
Before : "3~5배 / 6개월 / 골든타임" 큼지막하게
After : 전부 삭제
2. 정가 없는 할인
Before : "20% 할인"만 크게
After : "정가표·할인 적용가를 서면으로 함께 안내" 약속 추가
3. 타깃 안 맞는 사례
Before : 대기업·통신사·바이오만 나열
After : 성장기업(헬스케어·핀테크) 사례 앞세움 + "6차수 연속", "38명 4일" 등 구체화
4. 애매한 인원
Before : "20명"
After : "최소 10명~40명 권장"
5. 차별화 없음
Before : (없음)
After : "무엇이 다른가" 섹션 신설8페이지 → 7페이지로, 군더더기는 빠지고 알맹이는 채워졌어요.
AI 활용 팁!
이 방법, 제안서 말고도 "보내면 끝"인 문서엔 다 통해요.
- 고객 발송용 소개서·견적 설명서
- 투자자·윗선 보고용 발표자료
- 채용 공고, 랜딩페이지 카피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 "검토해줘"는 약해요. "이 사람인 척 읽어줘"가 셉니다. 페르소나를 구체적으로 줄수록(바쁜 대표, 데인 적 있는 이사) 지적이 날카로워져요.
- AI가 자기 지적을 스스로 다시 검증하게 하세요. "그거 트집 아니야?" 한 겹을 넣으면 억지 지적이 걸러져서 믿을 만한 것만 남아요.
- 점수를 매기게 하세요. "좋아요/아쉬워요"보다 "10점 만점에 몇 점"이 훨씬 냉정하게 나옵니다.
바로 쓸 수 있는 프롬프트
복잡한 도구 없이, 그냥 AI한테 문서 주고 아래처럼 요청하시면 돼요.
너는 지금부터 이 제안서를 읽을 가상 고객 2명이야.
- 고객 A: [바쁜 스타트업 대표 — 30초 훑고 덮을지 결정하는 사람]
- 고객 B: [예산에 민감하고 외부 업체에 데인 적 있는 운영 담당자]
각 고객 입장에서 이 문서를 읽고,
1) "문의하고 싶은 마음"을 10점 만점으로 채점하고
2) 왜 그 점수인지, 어디서 마음이 닫혔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줘.
그 다음, 네가 지적한 문제들을 스스로 다시 검증해줘.
"이건 진짜 문제인가, 아니면 트집인가?"를 따져서 진짜 문제만 남겨줘.
※ [ ] 안은 본인 상황에 맞는 고객으로 바꿔서 쓰세요.
보내기 전에 까이는 게, 보내고 나서 조용한 것보단 백 배 낫더라고요. 다음 제안서 나가기 전에 한 번 써보세요. 30분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