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
좋은 음식을 만들려면 좋은 식재료를 써야하듯
미래 예측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양질의 정보를 수집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정보 수집 과정이 보다 쉽고 재미있어질 수 있게
여행을 왔다고 한 번 상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여행지에서 가장 맛있는 맛집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검색하고 지인들에게 수소문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유명한 맛집을 두 곳 찾아냅니다.
한 곳은 전세계 셀럽들이 다녀가는, 소문난 관광 맛집입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돈 많은 관광객들이 주 로 가고 로컬들은 잘 안 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인스타에서 항상 화제를 끌고 다니는 맛집입니다. 단, 요리가 맛있어서 화제가 되는 경우는 잘 없다고 합니다.
또다른 한 곳은 셀럽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지역 주민들과 전국의 요리사들이 손에 꼽는 맛집입니다.
이 맛집에는 마스터 쉐프급 요리사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전국의 요리사들이 모두 이곳으로 요리 연수를 오고 싶어 한다고 하네요.
여러분은
여행기간 중 단 한 곳밖에 방문할 수 없고
위 정보만으로 어느 곳이 진짜 맛집인지 판단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정보 맛집
다소 복잡하고 재미없는 내용을
여러분이 쉽고 지루하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로 설명드렸는데 어떠셨나요?
위 내용을 표로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노동의 미래를 맛보고 싶을 때 이용할 수 있는
2곳의 정보 맛집, 다보스 포럼과 전미경제학회는
각각 소문난 관광 맛집과 마스터 쉐프가 있는 맛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여러분은
각각의 정보 맛집이 갖는 장단점을 보다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각각의 맛집에는 어떤 특색있는 메뉴가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첫번째 맛집, 다보스 포럼 (세계 경제 포럼)
노동과 일자리의 미래를 찾아 먼 타 분야에서 온 관광객들은
유명하긴 하지만 로컬이나 소위 말하는 ‘맛잘알’들은 잘 찾아가지 않는
관광객 전용 맛집, 다보스 포럼을 많이 찾습니다.
하지만 이 맛집은
유명한 명성에 비해 잡음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보도 자료 : 다보스포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이전까지 포럼에서 명확한 성과가 없었고, 특히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미·중 정상이 불참하면서 그 효용에 대한 의구심이 나타나고 있다.”
“알자지라는 다보스포럼이 국제 사회의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해도, 여전히 글로벌 갈등을 줄일 기회를 제공한다고 전했다.”
“쿼츠는 다보스포럼에서 나온 약속이 실현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다보스포럼이 여전히 권력자들이 모이는 유례없는 글로벌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아주경제, [다보스 2024] "미중 정상 없는 다보스…인적ㆍ지식 교류의 장으로 의미"
“세계경제포럼은 민간포럼일뿐이다. 유엔같은 국제기구가 가진 권한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포럼에 참여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갈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한겨레 신문, 국제기구도 선출권력도 아닌…’다보스 엘리트계급’ 포럼 개막
세계경제포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전세계 경제학의 본산일 것 같은 이름과는 달리
이곳은 클라우스 슈밥 개인이 만든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사교 클럽의 성격이 짙은 곳입니다.
이름에 국민이라는 단어를 넣었더니 민간은행인 국민은행이
‘한국인이 금융공기업하면 떠올리는 은행 2위’가 된 것과 비슷한 대표성 휴리스틱 사례죠.
한국경제, 금융공기업 하면 떠오르는 회사는, 2011.10.14
이 맛집에서 팔고 있는 메뉴를 한 번 살펴볼까요?
이 곳의 추천 메뉴는 ‘5년 내 1400만개 사라져’ 메뉴입니다.
굉장히 자극적이고 매운 맛이 특징입니다.
파이낸셜뉴스, “AI, 5년내 일자리 23% 뒤흔든다” 다보스포럼…1400만개 사라져
그런데 이 식당의 과거 이력을 같이 살펴보니
8년 전 이와 유사한 ‘5년 내 500만개 사라져’ 메뉴를 냈다 논란이 돼 메뉴판에서 내린 적이 있습니다.
보도 자료 : 2016년 다보스 포럼의 2020 일자리 전망
“WEF는 2020년까지 향후 5년 동안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총 710만개 일자 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로봇을 비롯한 신규 기술이 새롭게 만들어낼 일자리는 200만개에 불과하다.”
“어림잡아도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는 얘기다.”
ZDNET Korea, 4차산업혁명…일자리 500만개 사라진다
2016년의 다보스 포럼에서는
인공지능 1등 국가 미국이
2024년, 노동 수요 폭발과 임금 상승으로 골머리를 앓게 될 미래를 몰랐던 걸까요?
미래 예측 메뉴는 요리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워 많은 요리사들이 기피하는 메뉴인데
여기에 도전하는 용기있는 행동이 맛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두번째 맛집, 전미경제학회
이곳은 사람들에게 덜 알려졌지만
전문 요리사들이 입을 모아 지역을 넘어 세계구급 맛집이라고 말하는 곳입니다.
요리사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인정 받은 사람들만이
이 식당의 주방장이 되는 영예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다보스 포럼의 주방장은 요리사가 아닌 정치인, 기업가 출신이었던 것과 비교되죠.
“5대 경제 학술지 중 하나인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를 발행하는 단체”
“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역대 학회장을 역임한 학술적 권위가 있는 단체”
물론 전미경제학회의 모든 요리사들이
저희가 그토록 찾아헤매고 있 는 ‘노동의 미래’ 메뉴를 잘 만들어서 이런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다른 메뉴로 마스터 쉐프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같은 요리사라도 양식 전문 요리사가 한식까지 맛있게 만들지는 못하듯
이 요리사들이 ‘노동의 미래’ 메뉴를 만들 경우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미경제학회는 그 명성답게 저명한 ‘노동의 미래’ 전문가들이 여럿 있고
이들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 경제학회의 ‘노동의 미래’ 전문가들은
‘노동의 미래’ 메뉴가 어떤 맛이어야 한다는 것에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맛집에는 어떤 메뉴가 있을까요?
이곳의 추천 메뉴는 ‘벌써.. 몇번째 사라진다는거니..?’ 입니다.
전미경제학회를 포함해 일자리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미국과 한국의 경제학계에서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것과 달리 일자리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의견 일치를 보일 수 있는 부분을 모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사실 4가지
신기술은 일자리를 대체하는 동시에 창출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증감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2023년까지의 데이터만 보면 향후 인공지능이 없앨 일자리보다 만들어낼 일자리가 더 많아보인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인공지능 시대에 일자리의 개수보다 부의 분배 문제를 훨씬 많이 걱정한다.
똑똑해야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지능에 대한 환상이다.
(ex: 아프리카의 수많은 저학력 데이터 라벨러들을 보라)
대중들과 경제학자들의 말에서 이렇게 극심한 온도 차가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내외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국내 경제학계의 일자리 전망
신규 일자리와 생산성/임금 증가에 주목
“새로운 기술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기도 하지만,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한다. AI 기술을 개발 · 유지하는 고생산성 일자리와 AI 관련 스타트업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AI로 인한 생산성 증가는 전반적인 노동수요 증가 및 임금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지우 등, “AI와 노동시장 변화”, 2023, 한국은행, BOK이슈노트 제2023-30호
KDI 1 : AI는 인간 노동을 보완
“생성형 AI는 고용을 줄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AI 역시 일자리를 줄이기보다는… 직무 간 보완성을 높이며 재구성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신기술의 도입은 단기적으로는 기존 일자리를 대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
고상원, “AI 시대의 생산성과 고용”, 2023년 7월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글로벌 이슈 브리프 :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과 생산성 Vol. 11
KDI 2 : 의견이 분분하지만 과거 데이터는 일자리 창출을 지지
“학계에서도 AI가 일자리를 대체할지 아니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지 여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지난 10년간 AI 연구에 따르면… AI로 대체될 일자리보다 창출될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 예측되는 상황이다.”
반가운, “AI 시대, 미래 필요역량과 새로운 숙련체제”, 2023년 7월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글로벌 이슈 브리프 :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과 생산성 Vol. 11
이처럼 많은 국내 경제학자들이
AI 기술은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것 못지 않게 만들어낼 잠재력이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해외 경제학계의 일자리 전망
크루그먼 : 인류의 일자리 위기라는 어설픈 SF
“크루그먼은 AI로 인한 인류의 일자리 위기는 어설픈 SF영화 속의 세계라고 단정한다.”
"AI로 인한 대량 실업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심지어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공포심은 언제나 만연했지만 로봇 생산성은 여전히 인간보다 낮다."
“크루그먼이 진단하는 인류 위기는 AI에 따른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부의 분배 문제다.”
매일경제, "AI로 일자리 부족? SF영화 얘기"…"테크놀로지가 지구를 뒤덮는다"
전미경제학회 : 인공지능 같은 범용 기술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
생성형 AI는 광범위한 분야의 생산성을 높이는 범용 기술 (General Purpose Technology, GPT) 이며, 전통적으로 경제학자들은 그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AI는 약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겠지만, 많은 새 일자리를 창출할 것”
Bloomberg, The Field of Economics Is Upbeat on AI’s Potential, 2024
인공지능이 현재 일자리의 95%를 대체해도 경제학자들이 별로 놀라지 않는 이유
Autor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1900년대 이후 100년 안에 농업 고용률이 40%대에서 2%대로 폭락
1900년대 아이오와 농부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와, 95%나 되는 농부가 짤리고도 식량 부족 사태가 오지 않았다니. 그것 참 엄청난 발전이군. 인류가 그 번영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무언가 다른 일을 찾았으면 좋겠네”
David Autor, 왜 아직 이렇게 많은 직업이 존재할까요?, TED
David Autor :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은 일자리가 존재하는 걸까?
“자동화와 기술변화는 역사적으로 일자리의 숫자를 줄이지 않았으며 로봇과 AI도 다르지 않다라고 주장했던 MIT대학의 Autor 교수가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라고 주장하며, 미래 일자리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던 연구자들보다 현재는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고상원, “AI, 로봇과 고용”, 정보통신정책연구원 (KISDI) 전문가 칼럼, 2019
해외 경제학자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습니다.
AI에 의한 노동 종말론은 국내/해외할 것 없이
마치 지구 종말론처럼 “이번에는 진짜 종말이다!”를 증명해야하는 위치에 있고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번 종말론도 ‘내가 사는 시대는 특별하다’고 여겨온
유서 깊은 자기중심적 편향 휴리스틱의 재현이 될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고 있습니다.
일자리 전문가인 경제학자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인공지능의 일자리 위협을 두려워하는 수많은 대중들과 달리
경제학자들이 이처럼 담담한 이유는
경제학자들은 인류가 이미 지난 100년 간
자동화 기술이 기존 일자리의 95%를 대체하는 경험을 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David Autor, 왜 아직 이렇게 많은 직업이 존재할까요?, TED
하지만 대중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수준의 자동화가 인류사에서 처음있는 일이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몇 십 년 주기로 고개를 드는 대규모 실업 사회 붕괴론
“자동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자동화 이론가들은 다가오는 자동화 시대가 다를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근대 이후 이미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다.”
“공장 자동화에 대한 예견은 1930년대와 1950년대, 1980년대에 수차례 제기된 이후 2010년대에 다시 출현했고, 그 때마다 사회가 재편되지 않는 한 ‘대규모 실업 사회 붕괴’가 시작되리라는 주장이 뒤를 이었다.”
아론 베나나브,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 탈희소성 사회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2022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 때는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지 못했고, 지금은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데 왜 똑같다 생각하는 거지?”
좋은 지적입니다.
경제학자들도 그럴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를 계산에 넣더라도 일자리 개수에 대한 걱정이 커지기 보다는
경직적인 교육 제도와 분배 악화에 대한 걱정이 커질 뿐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런지 잘 이해가 안 가시죠?
이는 우리가 흔히 ‘상식’이라고 접해 온
널리 알려진 노동과 일자리, 그리고 기술 진보에 대한 개념이
경제학자들의 것과는 꽤 괴리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지금부터는 여러분이
그 상식이라는 이름의 휴리스틱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기술 진보에 대한 상식 깨트리기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술 진보는
우리가 말하는 기술 진보와는 조금 다릅니다.
기술 진보란?
“여러 원자재를 조합하는 방식을 개선시킨 것” (improvement in the instructions for mixing together raw materials)
Paul M. Romer, “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 1989
여러분은 직장에서
중복 작성되던 문서를 하나만 쓰도록 프로세스를 개선해 시간과 인건비를 아껴주는 동료를 보고
일 잘한다고 칭찬하면 했지, 기술 진보를 이뤄냈다고 하지는 않으시죠?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보기에는 이런 것도 기술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일을 하는 데 투입되는 노동력과 시간 자원을 절약한 기술 진보죠.
이때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창조한건지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 기술을 가져와 도입한건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선택과 자원 활용의 관점에서 봤을 때 둘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같은 일을 하는 데 자원을 더 적게 투입하거나
비싼 자원을 더 싼 자원으로 대체하는 것
모두 기술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 ⊂ 동물인 것처럼
경제학에서는 생산성 개선 ⊂ 기술 진보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죠.
AI : 신, 너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그런데 다시 한 번 보세요.
동일한 일을 하는데 필요한
비싼 자원을 더 싼 자원으로 대체하는 것도 기술 진보라고 합니다.
이 관점을 AI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같은 일을 할 때 들어가는
인건비 > AI 사용료일 때에는
인간 노동을 AI 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이 기술 진보가 됩니다.
아하! 그래서 AI 기술이 발전하면
많은 분들이 두려워하는 일자리 대체 현상이 나타나는 거군 요.
왜 그런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인건비 > AI 사용료 공식은 한 번 달성되고 나면 영원히 유지되는 걸까요?
만약 인건비 < AI 사용료가 되면 어떻게 되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지될 수 없습니다.
경제학의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르면,
AI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에서는
AI의 공급이 그 수요보다 더 폭발적으로 일어나야
AI 사용료를 무료에 가깝게 유지할 수 있거든요.
Open AI의 CEO 샘 알트만이
반도체 1경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됐던
투자 유치 계획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유입니다.
그럼 1경원을 쏟아부으면 인건비 > AI 사용료 공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장담할 수 없습니다.
AI에 대한 시장 반응과 수요가 상상을 초월하면
1경원을 웃도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도
AI 사용료는 계속 오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못 채워서 절제하라고 요구하는 (노동 종말론에 따르면) ‘무능한’ 신과 달리
이 멋진 신세계의 AI는 언제나 인간의 욕망을 상회하는 공급 능력을 갖고 있는 신 이상의 괴물이 돼야 합니다.
내팽개쳐진 수요-공급의 원리
노동 종말론자들이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걸까요?
그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인공 일반 지능 (AGI) 이 등장하는 순간, 문자 그대로 “모든 곳”에서 인간 대신 AI를 찾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대한 수요는 폭발하고 인간 노동에 대한 수요는 줄어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들도 경제학의 수요-공급 원리를 들고와서 자신들의 핵심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도구를 쓴 탓일까요?
노동 종말론자들은
이 수요 공급의 원리를 잘 적용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라도 발견한듯 핸들을 90도로 꺾어버립니다.
수요-공급 변화에는 가격 변화라는 고라니가 항상 뒤따라다닙니다.
그런데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죠.
“수요 증가는 가격 상승을, 수요 감소는 가격 하락을 일으킨다.”
당근마켓에서 중고거래만 잠깐 해봐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죠.
그런데 노동 종말론자들은 확증 편향 휴리스틱에 갇혀
무의식적으로 “일자리는 사라진다!”는 결론을 미리 내버렸기 때문인지
수요-공급 변화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가격 변화는 다급하게 내팽개쳐버립니다.
본인들이 반만 써먹은 경제학의 수요-공급 원리는
가격 변화까지 반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데 말이죠.
그 가격 변화를 반영하면 결론이 어떻게 바뀔까요?
먼저, 가격 변화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가치 = 가격이라는 말로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노동 종말론자들은
노동의 가치가 줄어들고, AI의 가치가 상승하는 미래가 온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노동의 상대 가격은 낮아지고, AI의 상대 가격은 상승하는 미래가 온다”로 고쳐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건비 > AI 사용료 상태에서 시작한 산업도
노동 대체 기술 진보가 진행되면서 인건비는 내리고, AI 사용료는 올라
인건비 < AI 사용료로 부등호가 뒤집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등호가 바뀌는 순간
노동의 미래도 뒤집어집니다.
이제는 비싼 AI로 하던 일을 → 싼 인간 노동으로 해결하는 것 = 기술 진보가 됩니다.
AI의 가치가 오를수록 오히려 고용될 기회도 늘어나게 되죠.
이것이 바로
시장이라는 정보 시스템과 가격이라는 가중치를 이용해
한 사회의 자원 활용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원시적 딥러닝,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입니다.
원시적인 인공지능, 시장
“보이지 않는 손이 딥러닝이라구요???”
네. 이것이 여러분을 위해 제가 준비한 두번째 빨간약입니다.
인공지능은 인류가 만든 최초의 무생물 지능 시스템이 아닙니다.
네트워크화된 지능의 2가지 사례 : 머신러닝과 시장 경제 시스템
“네트워크화된 지능 개념은 머신러닝과 경제적 의사 결정을 공통의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는 같은 시스템 카테고리로 묶어주는 주요 사고 양식이 됐다.”
인공지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머신러닝의 퍼셉트론을 고안한 신경생물학자 프랭크 로젠블랫이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정보 경제학의 선구자 하이에크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has been heavily influenced by Hebb and Hayek.”)
Rosenblatt, ”Principles of Neurodynamics”, p. 5.
하이에크는 1945년, 20세기 경제학계를 뒤흔들어놓은 그의 논문
“사회에서 지식의 사용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과
1952년 발간된 그의 저서 “감각적 질서 (The Sensory Order)”를 통해
요즘 말로 표현하면, ‘경쟁 시장이 마치 인공지능처럼 동작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하이에크는 시장을 가격 정보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하는 수많은 뉴런 기반 지능, 곧 뇌들의 네트워크라고 보고
시장이라는 네트워크화된 인공적인 지능 시스템이
뉴런 네트워크와 가격이라는 가중치 정보를 이용해 분산된 지식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 도와주면
국가는 개인의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의 정보 처리 능력을 얻게 돼
소수의 천재가 이끄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자원 활용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반도체 기반의 인공지능과 비교되는 뉴런 기반 인공지능,
시장의 정보 처리 능력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 과학에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말로 잘 알려진
사회 조직, 커뮤니티의 네트워크 효과는
이처럼 연결 시 더 높은 지능과 정보 처리 능력을 얻게 되는 정보 시스템의 특징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이에크와 로젯블랫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뇌가 머신 러닝과 같은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정보 시스템의 한 종류라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됐습니다.
이빨간약은
우리가 비판 없이 수용했던 뇌와 지능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깨고 나올 수 있게 해줍니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지능이 생물, 특히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자기중심적 편향 휴리스틱 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그럼 진실은 무엇인가요?
인간은 지구 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무생물인 정보 시스템도 지능을 가질 수 있고, 학습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지능과 학습은 인간과 생물의 전유물이 아닌 정보 시스템의 전유물입니다.
그리고 지구 상에서 가장 지적인 정보 시스템은 인간이 아닌
생태계라는 이름의 진화 정보 시스템 혹은 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인간의 지능을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지구 상에서 스스로의 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존재 중, 가장 지적인 존재니까요.
다시 쓰는 노동 종말론
이렇게 빨간약을 먹고 세상을 다시 보면
갑자기 대규모 실업과 잉여인간이라는 개념이 다시 보입니다.
앞서 살펴봤듯
시장이라는 네트워크화된 지능은
인간을 노동하는 생체 로봇으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연산하는 반도체, 퍼셉트론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장은
컴퓨터가 없던 시절, 인간 뇌 네트워크의 분산된 병렬 처리 능력에 기반해
막대한 수요-공급 정보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에 의한 노동 종말론을 이렇게 고쳐 쓸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
지금까지 잘 활용해왔던 생물 반도체 혹은 생물 컴퓨터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
자원 활용 효율 감소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2024년 현재의 인적 자원을 인공지능과 비슷한 정보 시스템이라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보세요.
우리는 말을 안 듣긴 하지만 미래의 AGI, 휴머노이드를 몇 년 앞서 땡겨 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이 자원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대기 자원만 소모하도록 방치하는 게
더 뛰어난 지능이 내린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착각은 경제학을 전공하 지 않은 사람들이
회계적 비용과 기회 비용 개념을 쉽게 혼동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시간을 사고 파는 노동 계약
이에 대한 시사점을 주는 한 불세출의 SF 소설이 있습니다.
이언 M. 뱅크스의 초인공지능에 의한 탈희소성 유토피아, ‘컬처’ 시리즈입니다.
“’컬처’ 시리즈는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탈희소성 사회를 다룬 작품으로, 인간이 ‘마인드mind’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로봇과 공존하며 시장이나 국가 없이도 풍요롭게 사는 세상을 그린다.”
아론 베나나브,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 탈희소성 사회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2022
컬처 시리즈는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가 사랑하는 SF 소설로도 유명하며
일론 머스크에게 뉴럴링크와 하이퍼루프의 영감을 준 책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실리콘 밸리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이안 M. 뱅크스의 소설을 읽어보세요.”
The Economist, “The novelist who inspired Elon Musk”, by Tim Cross, 2017.03.31
초인공지능(ASI)이 경영하는 자동화된 공산주의 유토피아
‘컬처 문명’의 핵심은
오늘날의 보이지 않는 손과 시장이라는 원시적인 인간 뇌 기반 인공지능 시스템을
반도체와 딥러닝에 기반한 첨단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뱅크스의 컬처 문명에는
시장과 화폐 경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짜주는 생산/분배 계획으로 대체됐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초인공지능에게 주문하면 되는 자동화된 공산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처럼 인공지능 사회는
거의 모든 상품을 무료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회계적 비용이 0원인 사회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조차도 시간은 여전히 희소한 자원입니다.
시간의 희소성마저 사라지면 선택의 문제도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간의 희소성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학에서는 이런 사회를 기회 비용이 0인 사회라고 부릅니다.
“내가 포기한 선택지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기회 비용.
이것이 0이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선택의 문제가 사라지면 유토피아가 될 줄 알았는데,
이게 유토피아인가..? 싶은 물리 법칙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 기괴한 사회가 됩니다.
시간의 희소성과 선택의 문제가 완전히 없어진 세상을 만들려면
이처럼 물리법칙의 제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아무리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시간을 구매할 충분한 인센티브가 생깁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물리법칙마저 바꿔버릴 기술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실, 토론은 여기서 끝입니다.
우리는 노동 계약, 제품/서비스 매매 등 의 거래를 통해 물질 뿐만 아니라 시간도 사고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AI에게 시간을 파는 노동 계약을 맺으면 됩니다.
AI는 AI만이 할 수 있는 역노화 기술 연구 같은 분야에 특화하고
인간은 인간도 AI도 모두 할 수 있는 라면 끓이기 같은 분야에 특화해 AI가 가치있는 일을 하도록 돕습니다.
마치 GPT-4는 GPT-3가 할 수 없는 사과의 의학적 효능 정리 작업을 하고
GPT-3는 GPT-4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자신도 할 수 있는 사과 → apple 번역 작업을 맡듯이 말입니다.
열등한 인간과 GPT-3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AI와 GPT-4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 수 있는 마법
그게 기회비용과 경제학의 분업 원리라는 마법입니다.
회계적 비용과 달리, 기회 비용은 AI의 능력이 강해질수록 이에 비례해 치솟습니다.
시급 만 원을 받는 편의점 알바생이 1시간 놀 때의 기회비용은 만 원이지만
일론 머스크가 1시간 놀 때의 기회비용은 몇 백 ~ 몇 천 만원이 되는 것처럼요.
AI가 그림 한 장을 그려낼 수 있는 시대에 AI 1단위가 갖는 기회비용보다
AI가 항성 간 워프 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시대에 AI 1단위가 갖는 기회비용이 훨씬 비쌉니다.
따라서 AI가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높아질수록
신입 알바생도 할 수 있는 일에 일론 머스크를 고용하지 않듯
인간도 할 수 있는 일에는 AI를 쓰지 않게 됩니다.
미래의 네트워크화된 지능 : 뇌와 AI의 결합
앞서 살펴본 하이에크의
네트워크화된 지능 이론을 여기에 접목해보겠습니다.
현재의 AI는 기계 반도체를 이용해 각종 연산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만약 AI가 발전해
시장 시스템이 인간 뇌를 이용해 막대한 정보를 처리한 것 처럼
인간 뇌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 컴퓨터의 저장 자원을 보면
빠르고 비싼 캐시 메모리와
조금 느리고 덜 비싼 램
아주 느리고 저렴한 하드디스크/SSD
가 모두 골고루 쓰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일 성능 좋은 캐시 메모리만 쓰지 않고, 느린 자원들도 활용합니다.
심지어 가상 메모리라고, 램 용량이 부족하면 하드디스크/SSD를 임시로 램처럼 가져와 쓰기도 합니다.
컴퓨터의 계산 자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하고 빨라야하는 계산은 CPU에게
단순하고 조금 느려도 많은 양을 처리해야하는 계산은 GPU에게
각각 맡기고 있습니다.
인간과 AI의 지능이 네트워크화 되면
이와 비슷하게 운영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AI가 더 잘할 수 있는 작업이나, 중요한 작업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작업이나, AI의 자원을 아껴주는 일은 인간에게 맡기는 등
정보 처리 자원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인간과 AI의 지능이 연결돼야 한다구요? 그런 기술이 개발될려면 오래 걸리겠네요”
그건 아닙니다. 지금도 바로 가능합니다.
정보를 주고 받을 수만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