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장 꼭대기를 알려주는 알람을 만들었더니, 지금 "0/14 양호"라고 한다
공격적인 포트폴리오를 들고 있는 사람이 매일 던지는 질문 하나 — "이 상승, 언제까지 가는 거지?" 그 질문에 감(感) 말고 다른 걸로 답해보고 싶어서 만든 대시보드 이야기입니다.
소개
고백부터 하자면, 제 포트폴리오는 공격적입니다.
상승장에선 천국입니다. 계좌가 알아서 불어 나고, 사는 족족 오르고, "역시 내가 맞았지" 하는 자신감이 붙습니다.
문제는 항상 그다음입니다.
상승장은 종을 치고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늘부터 하락장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아요. 그냥 어느 순간 돌아보면 고점은 한참 전이었고, 공격적으로 들고 있던 만큼 토해내는 속도도 빠릅니다. 그동안 번 걸 몇 주 만에 반납하고 나서야 "아, 그때가 꼭대기였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저는 그 "언제 꺾이는가"를 오랫동안 감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뉴스를 보고, 커뮤니티 분위기를 보고, 차트를 보고, 막연히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감은 두 방향으로 다 배신합니다. 너무 빨리 겁먹어서 상승장을 통째로 놓치거나, 너무 늦게 알아채서 고점에서 못 내려오거나.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예측은 포기하자. 대신 관측을 하자.
진행 방법
1. 맞히려는 게 아니라, 무너지는 신호를 보려는 것
먼저 마음을 고쳐먹는 게 제일 중요했습니다.
저는 톱(top)을 맞히려는 게 아닙니다. 그건 아무도 못 합니다. 어떤 화려한 지표 조합도 "여기가 꼭대기"라고 안정적으로 찍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건 가능합니다.
과거에 상승장이 무너질 때를 돌아보면, 그 직전·직후에 거의 항상 같이 나빠졌던 신호들이 있습니다. 장기 추세가 깨지고, 변동성이 튀고, 신용 스프레드가 벌어지고, 금리 커브가 뒤집히고, 고용이 빠르게 식는 패턴이요. 매번 똑같진 않지만, "시장 내부 구조에 금이 가고 있다"는 건 숫자로 관측이 됩니다.
그래 서 목표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시장 꼭대기를 예측하는 대시보드가 아니라, 시장 내부 구조가 무너지고 있는지 한 화면에서 관측하는 대시보드.
2. 무엇을 볼 것인가 — 여러 축을 14점 복합 점수로
핵심은 하나의 지표를 과신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지표든 혼자서는 자주 거짓 신호를 냅니다. 그래서 성격이 다른 신호들을 모아서, 여러 경고가 동시에 켜질수록 점수가 올라가는 14점 만점 복합 점수로 묶었습니다.
화면 맨 위 헤드라인은 가장 직관적인 3개입니다.
추세 — S&P500 vs 200일선: 장기 추세 위에 있는지 아래로 깨졌는지. 거의 모든 하락 국면의 공통 1번 신호입니다.
공포 — VIX: 시장의 변동성 체온계. 구조가 흔들리면 급등합니다.
신용 — HY OAS(하이일드 스프레드): 신용시장이 위험을 얼마나 더 비싸게 요구하는지. 주식보다 먼저 위험 신호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아래로 고용(실업률·Sahm Rule), 금리 커브(10Y-2Y, 10Y-3M), 장단기 금리, 금융여건(NFCI)까지 공식 지표를 같이 봅니다. 하나하 나는 노이즈여도, 여러 개가 같은 방향으로 켜지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3. 데이터는 전부 "공식 RAW"만, 그리고 출처를 추적 가능하게
여기가 제가 가장 신경 쓴 부분입니다.
투자 대시보드는 숫자에 책임을 못 지면 그냥 예쁜 장식입니다. 그래서 두 원칙을 박았습니다.
mock 데이터 미사용. 화면의 모든 숫자는 FRED, CBOE 같은 공식 소스에서 실제로 가져온 RAW 값입니다.
출처 역추적. 핵심 수치는 전부 원본 URL과 수집 시각으로 되짚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숫자 어디서 났어?"에 항상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거든요.
그리고 솔직하게, 아직 비워둔 칸도 일부러 그대로 뒀습니다. 시장 폭(breadth)과 섹터 순환 — RSP/SPY, IWM/SPY, XLY/XLP, XLK/XLU, SMH/SPY 비율, 등락 종목 누적선, 200일선 위 종목 비율 같은 7개 항목은 공식 무료 RAW 경로가 아직 부족해서 자동 점수에서 빼뒀습니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것보다, 비어 있는 걸 비어 있다고 보여주는 게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4. 이 노가다를 에르메스 에이전트 데스크탑한테 시켰다
여기가 이 글의 진짜 주제입니다.
위 작업을 뜯어보면, 제가 한 건 사실 "무엇을 볼지 정하는 판단"뿐입니다. 그 뒤에 붙는 건 전부 반복 노가다였어요. 공식 소스에서 데이터 가져오기, 각 지표를 규칙대로 점수화하기, 히스토리 쌓기, 결과를 정적 페이지로 배포하기, 숫자마다 출처 붙이기.
예전 같으면 스크립트 짜고 에러 잡고 배포 만지느라 며칠을 썼을 일입니다. 이번엔 에르메스 에이전트(데스크탑 버전)한테 맡겼습니다.
데스크탑 버전이 좋았던 건, 에이전트가 데이터를 어떻게 가져오고 어떤 파일을 만지는지 눈으로 보면서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투자 관련 작업은 "얘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안 보이면 불안한데, 과정이 보이니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습니다. 데이터 fetch와 점수화는 별도 monitor 스크립트가 수행하고 웹 페이지는 결과만 보여주는 구조로 분리한 것도 에이전트와 같이 정리한 결과입니다.
사람이 판단하고, 반복은 에이전트가 한다 — 자가학습형 에이전트를 실제 내 문제에 써먹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결과와 배운 점
지금 화면이 말하는 것 (2026-06-08 기준)
글을 쓰는 지금, 대시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총점 0 / 14 · 판정 "양호" — 켜진 경고가 하나도 없습니다.
S&P500은 7,405.73으로 200일선 위 +7.9%, 52주 고점에서 -2.68%. 추세는 멀쩡합니다.
VIX 18.92 — 52주 고점 대비 -39%. 시장은 차분합니다.
HY OAS 2.76% — 신용 스프레드가 좁습니다. 신용시장도 평온합니다.
금리 커브(10Y-2Y +0.38%p, 10Y-3M +0.76%p) — 둘 다 정상(플러스). 역전 아닙니다.
Sahm Rule 0.1 — 경고선 0.5에서 한참 아래. 침체 트리거 없음.
NFCI -0.49 — 금융여건은 느슨한 편.
그래서 대시보드가 제시하는 행동 원칙도 단순합니다. 정기 분할 매수는 그대로, 신규 자금은 계획대로 코어/방어 자산에 규칙적으로, 레버리지는 신규 확대 금지.
여기서 제가 진짜 배운 게 나옵니다.
이 대시보드가 가장 쓸모 있는 순간은 빨간불일 때가 아니라, 지금처럼 다 초록불일 때다.
상승장에서 가장 위험한 건 하락이 아니라, 다 좋아 보일 때 방심하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0/14라서 안심하는 게 아니라, 0/14일 때조차 같은 화면을 열어 "아직 다 정상"임을 확인하는 습관이 핵심이더라고요.
무엇이 달라졌나
가장 큰 변화는 불안의 종류가 바뀐 것입니다.
전에는 "막연한 불안"이었습니다. 떨어질까 봐 무섭고, 팔자니 더 오를까 봐 무섭고. 근거가 없으니 결정도 못 했습니다.
지금은 "관측 가능한 불안"입니다. 매일 같은 화면을 열고, 14점 중 몇 점이 켜졌는지, 추세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를 봅니다. 여전히 미래는 모르지만, 적어도 무너지는 신호를 남보다 조금 빨리 볼 준비는 됐습니다.
정직하게, 한계도 분명합니다
시장 폭·섹터 순환 7개 축은 아직 점수에서 빠져 있습니다. 데이터 경로가 확보되는 대로 채울 계획입니다.
이건 매매 신호가 아닙니다. 점수가 올랐다고 팔라는 뜻이 아니고, 0/14라고 더 사라는 뜻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관측 보조 도구입니다.
저는 투자 자문가가 아닙니다. 이 글은 제 실험 기록이지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같은 지표라도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고, 과거 패턴이 미래를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
비워둔 시장 폭·순환 축을 공식 RAW 경로가 확보되는 대로 추가
점수가 특정 임계치를 넘으면 텔레그램으로 자동 알림
과거 하락 국면(닷컴, 2008, 2020 등)에 이 점수를 거꾸로 대입해보는 백테스트
빌드 시점에 숫자까지 HTML에 박아, 어떤 환경에서도 빈 화면이 안 나오게 만들기
마무리
상승장에서 가장 위험한 건 하락이 아니라, 하락을 못 알아채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감으로 버티는 동안엔 결정의 근거가 내 기분이었습니다. 이제는 적어도 같은 화면, 같은 숫자, 같은 출처를 봅니다. 예측은 여전히 못 합니다. 하지만 무너지는 신호를 관측할 준비는 됐고, 그 준비를 며칠이 아니라 에이전트와 함께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진짜 수확입니다.
지금은 0/14, 양호입니다. 다 초록불입니다.
바로 그래서, 저는 내일도 이 화면을 엽니다.
좋은 투자 도구는 미래를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직하게 보여주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